세자매네 이야기

93.이러쿵저러쿵

줄무니 2005. 3. 21. 01:06

두서없는 글을 쓰려고 한다. 최근의 이야기도 좀 오래된 이야기도 있다.

자꾸 늘어지는 내 게으름에 대한 변명도 있고

작년부터 꼭 기록해두고 싶었던 짧은 아이들 이야기도 있다. 너무 늦었지만

그래도 더 늦기 전에, 가물가물한 기억마저도 사라지기전에,

붙잡아 놓고 싶은 짧은 에피소드 몇 가지부터 시작하려고 한다.



♣호칭은 너무 어려워!

시댁에 갔다가 돌아오는 차안의 대화.

남편: 참, 어제 장모님 잘 들어가셨는지 전화 해봤어?

나: 그럼. 도착해서 전화 주셨어.

재이: 엄마, 누가 장모님 이예요?

나: 외할머니를 아빠는 장모님이라고 불러.

재이: 그럼 나도 장모님이라고 불러도 돼?

나: 아니~~너는 그냥 ‘할머니’하고 부르면 되.

재이: 그럼 나중에 엄마도 장모님 될 수 있어?

나: 그럼~재이가 결혼하면 재이 남편이 엄마한테 장모님이라고 부르는 거야.

재이: 그럼 나도 장모님 돼?

나: 재이가 결혼해서 딸을 낳으면 그 딸과 결혼한 남자가 장모님이라고 불러주지.

재이: 아들나면?

나: 그럼 시어머니 되는 거야.

재이: 난 딸 낳아서 장모님 돼야지! 근데 외할아버지는 뭐라고 불러요?

서이: 응! 나 알아! 장남!!!

푸하하하핫!


♣승이는 동물?

승이가 유치원에 다닌 지 3개월이 지났다.

가끔 유치원 가기 싫다고 하지만 대체로 잘 적응하여 즐겁게 다닌다.

재미있는 건 집에서 놀던 오만가지 장난감을 전부 유치원 가방에 집어넣어

가방이 늘 무겁다는 건데,

그래도 엄마에게 들어달라지 않고 아무리 무거워도 제가 꼭 메고 다니니 신통하다.

어느 날 가방이 터질 듯 두툼하여 정리 좀 하자며 가방을 거꾸로 하여 내용물을 펼쳐보니 별별 잡동사니가 다 나왔다.

서이가 없어졌다고 찾던 지우개, 재이가 자주 묶는 머리 고무줄, 아빠의 안경 닦는 작은 수건, 머리 빗, 손톱깎이, 인형 손수건, 장난감 강아지의 뼈다귀까지......


나: 아니, 이게 뭐야? 승이가 개야? 웬 뼈다귀까지 넣고 다녀?

킬킬거리는 아이들과 나. 그때 재이가 하는 말.

“엄마, 엄마가 맨날 아이구 우리 강아지~~하니까 자기가 진짜 강아 진줄 알았나 봐. 킬킬킬”


♣우린 옛날에 뭐였을까?

문화센터의 수업시간이 아직 좀 남았기에 아이들과 백화점의 양말코너에서 양말을 고르고 있었다. 그때 뜬금없는 재이의 질문.

“엄마, 우리가 옛날에 태어났으면 그냥 백성이지요?”

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킬킬 웃었다.

“글쎄...공주님이나 왕비였을지도 모르지?”

“아냐, 그냥 백성이었을 거 같아.”

“엄만 왕비였을 거 같은데?”

“히히 아냐...그냥 백성이었을 거야~~~~”


♣고용창출 이라구?

아이들의 놀이는 시대를 반영한다. 거창하게 들리지만 사실이다.

TV의 인기 있는 프로그램을 흉내 내기도, 패러디도 하고,

자기들 학교의 모습, 그즈음의 병원모습, 시장모습도 다 나온다.

하긴 요즘 시장놀이는 거의 백화점 놀이이거나 대형 마트 놀이다.


서이, 재이, 승이의 시장놀이도 그 마트 놀이인데

예전의 놀이에서 계산대의 계산하는 언니가 가장 인기가 높았다면

요즈음은 반짝반짝 언니가 더 인기가 있다.

반짝반짝 언니는 대형 마트나 백화점 입구의 유리부스 안에서

“안녕하십니까?”

“즐거운 쇼핑 되십시오.”

“감사합니다.”

등등의 인사를 하며 무릎을 살짝 굽히며 손을 반짝반짝 하는 그 안내원을 말한다.


재이는 계산대 언니, 서이는 반짝반짝 언니 그리고 승이는 손님이거나 계산대를 가끔 맡기도 하는 아르바이트생이다.

일요일 오후 마침 한창 시장 놀이하는 아이들을 데리고 백화점에 갔다.

늘 그 <반짝반짝 언니>가 마땅치 않았던 나는 백화점 입구에서 한마디 했다.

“꼭 저런 안내를 해야 하는 거야? 주차 안내하는 사람 따로 있는데, 아무것도 하는 거 없이 인사만 하는 저런 걸 해야 하는 건지...쯔쯧”

남편 왈.

“꼭 그렇게 볼 것도 아니야. 요즘 같은 불경기에 고용 창출도 되고, 좋잖아? 일거리가 생기는 건데.”

“고용 창출도 좋지만 하여튼 마땅치 않아. 쳇!”


쇼핑을 마치고 주차장을 빠져 나오려는데 아이들이 외친다.

“야~~이번엔 반짝반짝 아저씨네?”

정말 그 <반짝반짝 언니>가 화장실에라도 갔는지 젊은 청년이 그 일을 대신하고 있었다.

그때 남편 왈.

“으이그....젊은 녀석이 그렇게 할 일이 없냐! 저게 뭐야!”

“왜~? 고용 창출이라며~~?”

“고용 창출도 좋지만 사지 멀쩡한 놈이 반짝반짝이 뭐야! 반짝반짝이! 차라리 공사판에 가서 벽돌을 나르지!”

“요즘 건설업계는 불황인 게지. 유통업계는 호황이라 손이 모자랄 지경이구. 킬킬킬”


아이들이 한술 더 뜬다.

“다음에 시장놀이 할 때는 아빠한테 <반짝반짝 오빠> 시켜야겠다. 그치?”


요즈음 새로운 일을 하려고 분주히 움직인다.

승이가 유치원에서 오후에 오니 내 시간이 넉넉해져서 뭔가 해보려고 마음먹은 건 아닌데,

우연히 나에게 일을 해보지 않겠냐며 권하는 사람들이 몇몇 있었다.

나하고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.

아직 인터뷰가 남았고 결과도 기다려야 하고 일을 시작하지도 않았기에

밝히기가 뭣하다.

다만 이렇게 어정쩡하게 밝힌 건 그동안의 게으름에 대한 변명이다.

앞으로도 더 칼럼에 소홀할지 모르겠다.

그러나 단언하건대, 내 생활의 변화를 너무 늦지 않게 기록할 것이고,

끊임없이 커가며 나를 시험에 들게 하는 우리 세 자매들에 대한 얘기도 변함없을 걸 약속한다.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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